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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역사산책'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5.01.08 [독후감] 디자인 소사小史 (2) by 이 재용
  2. 2014.12.10 [디자인 역사 산책 6]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by yang.yang
  3. 2014.06.11 [디자인 역사 산책 5]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by 문한별
  4. 2014.05.08 [디자인 역사 산책 4]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by KAHYUN.
  5. 2014.04.11 [디자인 역사 산책 3] 1930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by yang.yang
  6. 2014.03.27 헨리 드레이퍼스 from 필로디자인 (4) by 이 재용
  7. 2014.03.26 [디자인 역사 산책 2]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2) by 문한별
  8. 2014.03.13 [디자인 역사 산책 1] 디자인과 삶의 철학 by KAHYUN.
2015.01.08 01:00

[독후감] 디자인 소사小史

디자인 소사小史
만국박람회에서 에코디자인까지, 디자인 160년사를 읽다
Kleine Geschichte des Design
카타리나 베렌츠 지음 Catharina Brents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디자인 역사를 공부해라

라고 디자인 이론가인 에치오 만치니는 말했다. 사실 디자인 학자에게 디자인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모두 다른 대답을 한다. 사람이 무엇을 고민하여 만드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 대량 생산의 시대에 모든 사람이 아름답고 실용적인 것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디자인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기능을 따르는 외관을 말하기도 하고, 의미를 재생산해 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두 서로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디자인 외부의 사람이 이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오히려 쉽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디자인에서만 벌어지는 것일까? 왜냐하면 200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디자인의 의미는 상당히 많이 변화를 겪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자인이 무엇인지'알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디자인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척 흥미롭다. 서문(p10-23)을 요약해 보았다.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스케치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디세뇨 Disegno'에서 유래했다. 새로운 기대가 높아지던 16세기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디세뇨를 "인간의 관념 속에서 산출된 인상을 정신적으로 마음껏 표현하고 생생한 형상으로 명백하게 그려내는 것"이라고 정의 했다. 이 개념은 페데리코 주카리(Federico Zuccari)에 의해 다시 정신적/내면적 스케치(Disegno Interno)와 실현된 스케치(Disgno Esterno)로 분화되었다. 디세뇨라는 단어가 영어권에서 처음 번역된 이후로 디자인의 개념은 수세기에 걸쳐 세밀해지는 동시에 좁은 의미로 전개되었다. 디자인은 스케치, 계획,설계를 의미하게 되었고 건축과 관련된 용어로 사용되었다.

19세기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디자인이라고 하면 스케치를 떠올렸으며, 디자인 학교라 하면 화가와 설계가들이 도안(데셍)을 잘 할 수 있도록 스케치를 가르치는 학교라고 생각했다.

이후 런던을 중심으로 도안 뿐만 아니라, 공업화된 생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최초의 산업 디자이너로 평가하는 크리스토퍼 드레서(Christopher Dresser)는 1873년에 쓴 <장식 디자인의 원칙>에서 자신을 예술을 실행하는 노동자로 불러달라고 하면서, 이 분야를 '공업 생산에 응용되는 예술'이라고 묘사했다. 고트프리트 젬퍼는 <기계예술과 건축예술에서의 양식>에서 "모든 도자기 제품은 우선 사용 목적을 통해서 ... 파악된다"라고 말했다.

이후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의 시대가 되었는데 이 시점부터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했으며 산업 디자이너라는 표현도 뿌리내리게 되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는 1870년부터 미술공예운동이 일어났으며, 독일은 이 영향으로 1907년 독일공작연맹이 설립되었다.

시카고 건축학파의 우두머리인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은 1896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라고 말하며 실용과 기술적 기능으로 형상을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바우하우스의 설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도 가구에서 주택까지 시대에 맞는 주거 발전에 활용된다고 말하며 "장식 없는 형태"를 주장했다. 반면 드레서의 주장인 '장식도 디자인에 포함'은 20세기 아르데코 같은 큰 규모의 운동을 통해 실현되었다.

1938년 영어권에서 먼저 '미국 디자이너협회'가 생겼고,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1960년대가 되면 '디자이너'라는 영어식 직업명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렇게 완성된 개념은 '확장'이라는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갔다.

미국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는 '산업 디자이너'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디자이너가 '생산/시장/판매 전략가'로서도 자신을 증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로위는 완성도에 있어서도 마야(MAYA - Most Advanced, Yet Acceptable)를 성공적인 디자인의 지표로 삼았다. 성공적인 디자인이란 가장 앞서있으면서도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헨리 드레이퍼스(Henry Dreyfuss)는 디자인의 전통적 역할인 '외양' 뿐만 아니라, 품질,비용,유지,유용성,안전 의 5가지 지표가 더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에는 여기에 생태학적 디자인 운동이 추가되는데, 가장 주요한 사람은 빅터 파파넥이다. 그는 저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에서 "디자이너는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높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디자인 개념은 사용자 중심 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처럼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머물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디자인의 개념을 계속해서 확장시킨다는 경향이 가장 중요한 공통 요소이다. 이렇게 디자이너의 역할은 다양하게 확대 발전되고 있는데, 스코트 클링커(Scott Klinker)는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디자이너를 '문화 창조자 Culture Maker'라고 불렀다. <이상 서문 요약>

책 마지막의 '해설'도 재미있다. 결국 디자이너의 시조는 크리스토퍼 드레서(영국), 고트프리트 젬퍼(독일), 윌리엄 모리스(영국) 셋 중의 한 명인가?

[참고##디자인역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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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0 01:00

[디자인 역사 산책 6]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2014년 2월 시작한 ‘디자인 역사 산책’이 지난 5월 말 6차 강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6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배움의 시간을 추억하며,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디자인 역사 산책’의 마지막 강연은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1주 : 디자인과 삶의 철학
2주 :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3주 : 1930 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4주 :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5주 :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6주 :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강연의 내용은 김민수 교수님의 저서의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이 글을 통해 전달드리지는 못하지만, 저서 “필로디자인”을 통해서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강연이 마무리될 즈음 교수님께서 앞으로 지향해야 할 디자인과 삶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정리해주셨습니다.

“디자인은 부분의 미학이 아닌 삶 전체의 총체적 미학이어야 한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디자인은 현혹하는 환경미화 혹은 이미지 치장술이 아니며, 기업 경영과 사회 공동체의 삶을 어떤 비전과 철학으로 담아낼지 삶을 약속하는 일이다.
둘째, 문화는 단순히 건물 및 시설물, 상품과 이미지의 집합체가 아니라 생명 현상을 소통시키는 유기체로, 디자인은 곧 삶의 본질을 원활히 소통시키는 일이다.
셋째, 문화는 중층화된 시간의 켜로 이루어진 연속적 삶의 조직이며, 디자인은 혁신과 함께 시간의 켜를 지속 가능하게 조직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디자인은 사회 공동체의 신뢰와 믿음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 동안 디자인을 공부하고 이를 직업으로 삼으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디자인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총 6회로 진행된 ‘디자인 역사 산책’에서는 독일에서 이탈리아, 일본을 거쳐 한국까지 국가별 디자인과 그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브라운사가 보여주는 지속가능한 철학, 디터람스와 같은 자기의 소신과 원칙이 디자인에 담겨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원칙과 철학을 가져야 하며,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는 문제를 직시하고 깨닫는 것, 가장 하찮은 것에서부터 찾아내고 본질로부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은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디자인의 본질과 디자이너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김민수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 6주차 강의는 앞으로의 저서 출간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에 강의 후기로 대체하였습니다.

[참고##디자인역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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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1 00:15

[디자인 역사 산책 5]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서울대학교 디자인 학부 김민수 교수님께서 진행하는 ‘디자인 역사 산책’ 강의의 다섯 번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을 주제로 교수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1주 : 디자인과 삶의 철학
2주 :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3주 : 1930 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4주 :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5주 :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6주 :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교수님께서는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4주차 강의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시간에 소개해 주셨던 올리베티의 발렌타인 타자기의 실물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붉고 선명한 색상의 바디는 정열적인 페라리를 떠올리게 했고, Rubber소재로 된 케이스의 잠금장치는 사물에 사람의 인성과 관계성을 부여하려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제품 디자인과 지금의 UI, UX 디자인은 미디어 자체의 변화일 뿐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고민의 차원은 서로 다르지 않으며 UI, UX 디자인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주셨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일본이 개항 이후 어떤 전략을 갖고 그들의 미술과 디자인을 발전 시켜왔는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상징적인 일본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일본의 형식적 틀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형식적 틀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한국 사회와 정신은 시각 문화로서 어떤 측면에서 추구하고 발전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함을 느낀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5주차 강의는 앞으로의 저서 출간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에 강의 후기로 대체하였습니다.
[참고##디자인역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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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8 01:00

[디자인 역사 산책 4]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4회 차 강연은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라는 주제로 감성디자인을 대표하는 이탈리아로 디자인 여행을 떠났습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를 탄생시킨 이탈리아 디자인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1주 : 디자인과 삶의 철학
2주 :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3주 : 1930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4주 :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5주 :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6주 :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1. 이탈리아의 장인정신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인은 와인과 비교되곤 합니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에서는 매우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세련된 맛이 특징인 ‘바르바레스코’, 묵직한 향과 고풍스러운 맛을 자랑하는 ‘바롤로’ 두 가지 와인이 피에몬테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에몬테 지방은 와인 생산뿐 아니라 마차에서부터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장인을 일컫는 ‘카로체리아’ 가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피에몬테의 여성스러운 바르바레스코와 묵직한 느낌의 바롤로를 적절히 배합한 카로체리아로는 피닌파리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피닌파리나는 페라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명차를 탄생시킨 카로체리아입니다.

피린파리나의 Cisitalia 202GT
출처 : http://www.made-in-italy.com/italian-design/news/italian-auto-design-exhibition-in-los-angeles

1947년에 생산된 사진 속의 피닌파리나의 자동차Cisitalia 202GT는 자동차로서 드물게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단판 경량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이 자동차는 이전의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가볍게 디자인되었습니다.


2. 이탈리아의 역사

Torino 올림픽 풍경과 엠블럼
참고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W5pMNgMuEds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개막 영상을 보시면 이탈리아의 역사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933년대를 표현한 안무는 현대적인 이탈리아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열정의 불꽃’ (Spark of passion)을 주제로 이탈리아의 열정, 역동성을 담아 이탈리아의 문화를 잘 담아 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F1 경주용 자동차의 바퀴자국을 이용해 올림픽 오륜기를 그려냈습니다. 자동차의 엔진소리와 오륜기가 형상화 된 모습을 보면 대장장이의 장인정신이 연상시키며 대중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인간의 몸, 땀, 시간이 녹여진 이러한 퍼포먼스는 이탈리아의 삶에 대한 열정에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삶에서 늘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삶 자체를 모든 촉각을 곤두세워 의식을 치르는 듯 한 과정에서 이탈리아 디자인이 발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이너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파스타를 보면 삶의 작은 일상까지도 신경 쓰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베스파(Vespa) 스쿠터도 1946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했습니다. 로마의 휴일에 등장한 베스파 스쿠터는 영화의 인기와 함께 대중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유선형의 몸체를 가지고 있는 베스파 스쿠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재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의 휴일
출처 : www.stranitalia.com

이탈리아는 1861년 통일되기 전까지 북부와 남부로 국토가 분리되어 있다가 1870년부터1914년 사이에 근대국가 체제를 갖췄습니다. 그렇기때문에 19세기 말까지 이탈리아의 산업은 대부분 소규모 가내 수공업 형태로 유지했습니다. 예컨대 산업은 기껏해야 유리, 도자, 텍스타일과 같은 영역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1900년대에 비로소 철강산업이 발전하면서 조선, 해양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후발 산업국가로써 급속한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프랑스의 아르누보 운동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의 스틸레 리베르티운동이 발전했습니다. 아르누보란 단순히 장식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구조의 기능과 형태에 구조적인 요소로 장식을 곁들이는 양식을 말합니다. 즉, 스틸레 리베르티 운동은 전근대적인양식이 근대양식으로 발전해 나가는 중간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에 따른 디자인이 발전함과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이탈리아의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모던 디자인으로써의 움직임과 동시에 전통을 지키는 운동이 함께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3. 이탈리아의 모더니즘
이탈리아의 모더니즘은 디자인뿐 만 아니라 예술 쪽에서도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미래파 작업은 모더니즘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래파의 예술가들은 근대 도시, 속도감을 화두로 던져 현대 도시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패션 디자인에서는 자코모 발라가 의상 자체에 속도감을 나타내면서 옷의 본질에 대해서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움베르니 보치오니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체의 변화를 조각에 잘 나타냈습니다.

자코모 발라 의상 스케치 : giacomoballaarthistoryproject.blogspot.com
움베르토 보치오니 조각 : m.busan.com

미국에서 헨리 포드가 보여줬던 대량 생산 체제의 모습을 이탈리아에서는 피아트가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아트의 대량 생산 체제로의 변화는 효율성을 중시한 자동차 산업의 모더니즘을 향한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1936년에 생산된 피아트사의 토폴리오(fiat 500) 자동차는 이탈리아 지형에 걸맞으면서도 스트림라인의 형태를 보여주면서 콤팩트한 미니카의 모습으로 디자인 된 가장 민주적인 자동차입니다.

1930년대 fiat 공장 모습 : www.lancisti.net
fiat 500(topolino) : www.mozartrents.com

피아트와 함께 올리베티도 이탈리아의 모더니즘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드리아노 올리베티는 1920년대에 미국의 합리적인 경영 방식을 배워와 아버지가 세운 올리베티 회사를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1930년대의 올리베티는 건축에서 타자기까지 모든 산업을 아우르는 토탈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출처 : http://oztypewriter.blogspot.kr/


4. 노베첸토 운동
이탈리아 잡지 도무스지가 일으킨 노베첸토 운동은 오스트리아의 양식에서 영감을 얻은 전통을 기반으로한 신고전주의운동이었습니다. 노베첸토 운동은 피아트와 올리베티가 주도한 미국의 대량 생산 방식을 이탈리아역사, 문화를 통한 필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더니즘과 노베첸토 운동이 함께 나타나게 되면서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적인 감각이 녹아 들게 된 것입니다. 노베첸토 운동을 통해 이탈리아는 자국의 역사를 토대로 끊임없이 발전시키면서 이탈리아 디자인만의 차별화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두모오 광장
출처 : wonderfull-tourism.blogspot.com


5. 개별의 디자이너에게 끼친 영향
에토레 쏘트사스는 미국식의 대량 생산 체제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이탈리아 디자이너로서 산업 디자인의 폭동을 일으킨 디자이너입니다. 1959년에 올리베티사에서 디자인한 컴퓨터는 컴퓨터를 도서관 서가식으로 분리해 사람들이 컴퓨터 사이를 드나들 수 있도록 디자인해 사람과 기계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고려했습니다. 또한 1969년 발렌타인 타자기를 보면 사람과 제품을 연결시키려는 에토레 쏘트사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외장 케이스가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디자인되었고 케이스 자체를 받침대로 사용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케이스 잠금부위가 고무로 되어있어 탄성을 이용해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타자기를 보관할 수 있도록 고려했습니다.


올리베티사의 컴퓨터 : we-make-money-not-art.com
올리베티사발렌타인타자기 : www.ganzomag.com

에토레 쏘트사스는 재료와 사물의 본질을 건드린 타당한 이유를 가진 감성을 디자인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안하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디자이너입니다. 1980년에는 60대의 나이에 멤피스 그룹을 결성해 그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현대사회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담아내면서 70-80년대의 새로운 디자인으로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6. 결론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에토레 쏘트사스, 피닌파리나가 가장 중요시했던 원칙은 사람과 제품에 대한 ‘사랑과 헌신’ 입니다. 제품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디자인을 하는데 있어 열정과 사랑도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 기술에 좌지우지되는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디자인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필요한 것인지를 다시 되돌아 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만약 그런 열정과 사랑이 없다면 디자인은 현란한 잔재주에 불과합니다. UX 디자인 분야에서도 감각적인 잔기술로 연명하는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아닌 ‘디지털 장인’으로써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의 기량을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김민수, 2014
저작권 보호를 위해 위 강연 컨텐츠의 무단 사용 및 복제를 금합니다.
[참고##디자인역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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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1 01:07

[디자인 역사 산책 3] 1930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총 6회로 예정된 김민수 교수님의 ‘디자인 역사 산책’ 이 벌써 3회차 강연을 맞았습니다. 3회차 강연은 "가상공간에 펼친 날개_1930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李箱)의 시(詩)”라는 주제로 1930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속의 이상의 생애와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문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문학가이자 건축가, 디자이너였던 융합예술인으로서의 이상의 작품과 생애를 입체적으로 재조명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1주 : 디자인과 삶의 철학
2주 :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3주 : 1930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4주 :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5주 :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6주 :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십여년전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문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상의 시와 글을 마주하고 있자면 늘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도통 난해한 언어들로 씌어진 그의 시를 이해하는게 제겐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디자인 역사 산책’의 세 번째 강연을 앞두고, ‘디자인 역사를 돌아보는 강연에서 왜 느닷없이 문학가인 이상이 등장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간략하게 전해드릴 본 강연을 통해서야 문학가이자 건축가이며, 삽화가이자 타이포그라피 디자이너였던 이상의 생애와 작품을 입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난해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했었던 그의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1. 이상은 누구인가?


이상 李箱 (191
0~1937.04.17)
 
그는 시, 소설, 수필에 걸쳐 두루 작품 활동을 한 일제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특히 그의 시와 소설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특성을 첨예하게 드러내준다. 시의 경우 그가 보여주는 것은 현대인의 황량한 내면풍경이며, 「오감도 시 제1호」처럼 반리얼리즘 기법을 통한 불안과 공포라는 주제로 요약된다. 또한 그의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 양식의 해체를 통해 현대인의 삶의 조건을 보여주는데, 「날개」의 경우 그것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어떤 일상적 현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파편화되고 물화된 현대인의 소외로 나타나고 있다.
(출처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이상은 현재까지도 후세에 의해 그의 작품과 생애에 대해 수많은 논문과 책이 나오고 있는 유일한 작가입니다. 이처럼 이상이 세상을 뜬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어지고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학계에서는 그를 언제나 '난해한 작가'로 신화화하고, 때론 그를 성도착자나 정신착란 등으로 폄하하기도 했는데요, 김민수 교수님은 그의 작품을 그가 살아온 공간적 환경과 생애를 함께 보지 못하고 문학의 틀 안에 가두어 해석하려한 문학적 순수주의 혹은 고립주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은 문학적 차원을 넘어서 시각 예술을 아우르는 융합 예술의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는 건축가이자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로, 우리나라 최초의 융합 예술가로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은 문학과 시각 예술 사이의 매체적 접점 영역에서 발생한 내밀한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이십여년간 직접 이상의 작품에 대해 연구한 김민수 교수님은 이상의 작품과 시각 예술 사이의 관련성은 단지 문학 연구를 보조하고 보완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진행시켰을 사고과정의 작업 논리에 초점을 맞춰 심층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김민수 교수님의 강연 내용을 저서 <이상평전>에 기초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이상의 '1928년 자화상'
이상이 경성고공 재학시절 이던 1928년에 그린 자화상은 얼굴 요소들이 제각각 비정형적으로 탈구되어 있습니다. 이는 미숙한 처리가 아닌 작가의 의도적 표현으로, 자기의 예술적 자아 ‘페르소나’를 최초로 표현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극도의 내면 심리를 빛으로 감광시킨 한 점의 포토그램과 같으며, 두 가지의 가설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폐결핵으로 각혈하기 전에 병약했던 이상의 심상을 반영한 것이며, 둘째는 독특한 내면적 세계관이 투영된 거울이미지라는 것입니다. 김민수 교수님은 후자 쪽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십니다.

이상의 자화상은 당대의 세계적인 예술사조인 표현주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조선에 서양화 기법이 유입된 이래, 이 작품만큼 강렬한 표현주의 이미지가 표명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표현주의와 모더니즘은 불가분의 관계로,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우하우스의 발터그로피우스 등도 표현주의를 거쳐갔습니다. 이러한 이상의 표현주의적 성향은 그의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에서 입체파적인 변형으로 시각이미지가 글로 변환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3. 이상의 성장 배경
이상은 어떠한 성장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예술적 감수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이상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상이 나고 자란 장소의 역사적, 지리적인 배경을 이해하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상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서촌 일대는 토목과 영선에 관한 일을 수행하는 관청인 ‘분선공감(分繕工監)’ 이 위치하고, 주변에 대대로 전문기술직 중인계급이 모여살았습니다. 이는 이상이 건축가가 될 수 있었던 지리적 환경, 연고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이 1934년 발표한 「오감도」 연작시 「시 제1호」 에는 '무서운 골목'에 대한 '장소 이미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문학 이론가들은 ‘공포의 기록’을 기호화한 것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이 공포의 실체는 이상의 백부이며, 이를 이상 문학에 내재된 공포의 근원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이 성장한 ‘장소’를 살펴보면, 그 공포의 대상은 어릴적 체험한 ‘무서운 골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이 성장한 동네의 막다른 골목에는 실제로 친일파 윤덕영과 이완용의 집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동네 아이들에게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악마같은 집과 마주했던 공포의 경험이 '막다른 골목'이라는 구절에 녹아 있을 것입니다. 

이상의 다른 작품에서도 또 다른 장소적 경험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상은 어린시절 늘 굴착소리와 기계소음을 듣고 성장했습니다. 1915년 개최된 '조선물산공진회' 박람회장 건립과 1916년 시작되어 1926년까지 이어진 총독부 신청사 건축공사 때문이었습니다. 경성고공에 입학할 때까지 이어진 공사 현장을 목격하며 건축가의 꿈을 품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유년시절 ‘식민지 근대화’의 상징이 건립되는 과정을 목격하였고, 이러한 체험이 훗날 건축가로서 실무 현장에서 겪은 경험과 합해져 시적 이미지의 모체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장소적 경험은 대표적인 난해시로 평가받는 ‘且8氏의 出發’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 시는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성적인 은유로 해석되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且8氏’는 좌절하지 않고 계속 땅을 ‘또-팔-사람’을 뜻하며, 따라서 「또팔씨의 출발」로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건축 기초공사인 항타작업을 지켜보며 자라온 이상의 성장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에만 집착하여 해석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팔씨’는 이상 자신의 또다른 은유이며, 「또팔씨의 출발」은 식민지의 모조 근대에 맞서 싸우겠다는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는 시로 볼 수 있습니다.


4. 최초의 융합예술가 이상
이상의 삶과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과 건축, 디자인 등 총체적인 시각 예술의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이상의 작품은 표현주의 뿐만 아니라 상대성이론 등 현대물리학의 지식들, 초현실 주의, 다다이즘과 같은 신예술사조에도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이 건축 잡지인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작품인 ‘또 팔씨의 출발’은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균열이들어간장가이녕의땅에한자루의곤봉을꽂는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시는 많은 문학가들에게 성적인 은유로 해석되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건축신조」와 같은 건축 잡지를 통해 당시의 건축 양식을 접할 수 있었던 이상은 설리번(Louis H. Sullivan), 라이트(Frank L. Wright)를 거쳐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로 이어지는 기능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위의 시의 구절이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관에서 볼 수 있는 형태와 시각이미지가 중첩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카펜터 시각예술센터(1962)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xyzt/4331292198/in/photostream/)

또한 「이상한 가역반응」, 「선에관한 각서」 등 기하학 용어들과 기호들이 난무하는 그의 작품들의 구절을 도식화 하면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내재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암호화된 언어는 억압된 시대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시대적 억압에 의해서 암호문처럼 씌여진 그의 작품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시각 예술의 차원에서 시각적 텍스트로 읽어내어야 숨겨진 측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다 전해 드릴 수는 없지만, 이상의 초기 실험시들을 시각적 이미지로 도식화 하여 해석한 내용들은 김민수 교수님의 저서 「이상평전」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상은 본인의 시를 ‘편’이 아닌 ‘점’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문학에서는 시를 ‘편’으로, 미술에서는 그림을 ‘점’ 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이상은 ‘시’를 시공간을 집약한 그림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마치며...
이상이 생전에 직접 운영한 제비다방은 건축가로서 자신의 공간미학을 펼치고 싶어한 공간이었습니다. 제비다방의 실내 공간과 기하학적 디자인의 모서리 의자는 현대 건축에서나 볼 수 있는 미니멀리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식민지 모조 근대건축’에 대한 환멸과 진정한 ‘근대건축’에 대한 그의 열망을 공간적 실천으로 나타낸것이 아닐까요.
본 강연을 통해서 문학가 뿐만아니라 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였던 우리나라 최초의 융합예술가인 이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문학작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성장배경을 기반으로 한 공간의 개념과 언어를 도식화, 시각화하여 해석하는 등 확장된 시각의 중요성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짝퉁 근대를 살해하려 치열하게 살았던 이상의 삶.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한 디지털 정보 혁명기에 오히려 열정이 사라진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는 1930년대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최초의 멀티미디어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출전: 김민수, <이상평전> (그린비, 2012)

ⓒ 김민수, 2014
저작권 보호를 위해 위 강연 컨텐츠의 무단 사용 및 복제를 금합니다.
[참고##디자인역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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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7 00:28

헨리 드레이퍼스 from 필로디자인

요즘 피엑스디에서는 '디자인 역사 산책' 강의가 김민수 교수님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 주 교재가 '필로디자인'이었다. 바우하우스와 여러 유명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읽어 보고,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산책하듯 생각하며 읽어갈 수 있는 책이다. 또 강의를 들으면서 짧은 강의 시간으로 전달되기 어려운 사실들을 배경으로 읽어 가기도 좋았다. 22명의 디자이너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헨리 드레이퍼스에 대하여, 책에 나온 내용을 조금 옮겨 보고 싶었다.


헨리 드레이퍼스(Henry Dreyfuss)는 1904년에 태어나서 1972년에 작고한 미국의 산업 디자이너이다. 
그가 이룬 디자인의 특징은 매우 엄격한 논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측면이다.
이는 그가 제품을 디자인할 때, 인간공학의 차원에서 인식했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형태에 천착했음을 말해 준다. 헨리 드레이퍼스를 미국 산업디자인의 원형으로 간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로디자인 p169)
"Henry Dreyfuss"로 이미지 검색을 해 보면 나오는 수많은 인체 측정 이미지가 그의 이러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가 1955년 출판한 책 제목도 'Designing For People'이다.


전화기
그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보면 우리가 옛날 영화에서 자주보던 검은색 전화기 (Western Electric 302)모델과 이를 플라스틱으로 계승한 500 전화기가 있다. 두 전화기 모두 매우 인기가 있어서 500 전화기 같은 경우 80년대 중반까지 생산되었다고 한다. 특히 500 전화기는 기존 전화기의 수화기 무게보다 가벼웠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을 유도했다. 형태적으로 어깨에 올려 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점이다. 그래서 요릴 하거나 타자기를 치는 동안에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그가 1968년에 디자인한 '트림라인' 전화기는 미국 영화에도 단골 소품으로 나온다. (미국 사람들은 항상 벽에 있는 전화를 받는데, 이 전화기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 트림라인 전화기는 결국 이후 핸드폰의 모습으로 진화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미지:http://mimimatelot.blogspot.kr/2013/08/the-henry-dreyfuss-affair.html)


온도 조절계
또 흥미로운 것은 그가 1953년(혹은 1964년)에 디자인했다고 하는 허니웰 사의 원형 온도 조절계이다. (Honeywell T87 Circular Wall Thermostat) 왜 두 이미지에서 가리키고 있는 온도마저 화씨 72도로 똑같은지 모르겠지만, 그의 디자인이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허니웰사는 네스트를 특허 침해로 2012년 고소했다)

(이미지출처:http://iyaan.info/honeywell-vs-nest-when-the-establishment-sues-silicon-valley/)


기차
그러나 이 글을 쓰게된 직접적인 이유는 그의 기차 디자인 때문이다.

서비스 디자인 사례를 이야기할 때, IDEO-Acela/Amtrak 사례를 많이 이야기한다. 처음 IDEO가 의뢰를 받았을 때는 단지 객실의 의자를 디자인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고객을 연구해보니 고객이 기차의 의자에 앉아있는 것은 여정의 매우 일부분이고 전체 여정에 걸쳐 감정의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잘 설계해야만 하는 타당성이 인정되어 서비스(기차 레이아웃, 기차 역 컨셉 및 브랜드)를 디자인하게 되었다는 일화다.
참고1: http://www.insead.edu/PracticalInformation/documents/IDEOServiceDesign-A_corrected.pdf
참고2: http://www.ideo.com/work/acela

1930년대의 뉴욕 센트럴 레일로드(New York Central Railroad)도 항공기와 자동차의 출현으로 시들해져 가는 철도 운송 분야를 살리고자 드레이퍼스에게 장거리 여행객을 유치하기 위해 매혹적인 기차 디자인을 의뢰했고, 이것은 '머큐리 프로젝트(1936)'가 되었다.
종래 기차 여행의 개념 자체를 바꾸기 위해 기관차에서부터 객차 인테리어와 식당차의 커피잔 세트에 이르기까지 기차 전체를 '토털 디자인'(TOTAL DESIGN)의 개념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특히 혁신적인 '머큐리 기관차'는 종래의 증기기관차가 지닌 구조적 복잡성을 단순한 유선형의 외관으로 통합 대치함으로써 기관차의 미래상을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후속 모델로 1938년에 '허드슨(Hudson) J-3A'라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기관차 디자인도 선보였다. 이 기관차는 1955년 영화 [007 골든아이] 속에 등장한 최첨단 무장 기관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강력한 미래 이미지를 남겼다. 또한 객차 인테리어는 기존의 차량과 달리 시각적으로 훨씬 더 넓어 보이면서 좌석은 기능적으로 앉기 편하게 디자인되었다.따라서 승객들은 비행기나 자동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20세기 최고의 운송 수단에 탑승했다는 매혹적인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필로디자인 p173)
(출처:http://mimimatelot.blogspot.kr/2013/08/the-henry-dreyfuss-affair.html)
그는 이런 새로운 기차 여행 경험을 디자인하기 위해, 기차의 기관차(locomotive) 디자인, 객차 디자인, 객차 인테리어 디자인, 특히 식당칸의 인테리어와 식기류, 테이블 웨어, 기차표 등등 기차 여행을 하는 여행객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디자인했다.

그의 이러한 토털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나머지 흥미로운 21명의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가 '필로디자인'에 실려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요즘 인기를 많이 얻고 있는 '디터람스'가 빠져 있다는 점.

[참고##디자인역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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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6 01:09

[디자인 역사 산책 2]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서울대학교 디자인 학부 김민수 교수님께서 진행하는 '디자인 역사 산책' 강의의 두 번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이라는 주제로 당시 근대의 길목에서 바우하우스의 역할이 무엇이였는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더불어 바우하우스 구성원들이 공유했던 디자인 이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 삶에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1주 : 디자인과 삶의 철학
2주 :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3주 : 1930 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4주 :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5주 :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6주 :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우선 2회차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시간에 진행한 '디자인과 삶의 철학' 강의 시 드렸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 당시 강의중에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를 반영한 제대로된 아이덴티티를 가진 디자인의 사례와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얼마전에 발표한 평창 동계올림픽 로고는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질문을 드렸었습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본인이 생각하시는 평창 올림픽 로고의 문제점과 함께 UX에 대한 관점을 더하여 답변해 주셨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로고 (출처 : http://pyeongchang2018.com)


Q: "평창 동계올림픽 로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평창 동계올림픽의 로고가 UX와 UI에 몇가지 단서를 주는것 같습니다. UX는 인지적 교감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UX 디자인이라 하면 우리가 경험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용자 경험이라는 것이 디자인을 하는 것에 있어서 독립변수로 작용할 수 없습니다. 경험이라는 것은 컨텐츠 영역에 들어가는 내용적인 측면입니다. 형태적인 것은 UI고 그것을 채우는 내용은 UX가 아닌가요? UX 디자인을 UI 디자인과 별개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접근하면 평창 로고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망각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올림픽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보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평창 로고) UI 차원에서 얘기했을때는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인이 이 로고를 평창의 'ㅍ'으로 읽을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될까요? 주관적 관점으로는 세계와 소통할 수 없으며 이것은 공감대 형성이 전혀 안되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눈은 선택적이므로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다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역대 올림픽 로고들은 가장 먼저 눈에 지각되어야 할 요소의 우선순위를 레이어 개념으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반면 평창 올림픽의 로고는 그것마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위와 같은 답변과 함께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2회차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해 본 적이 있다면 바우하우스는 분명 어디선가 보거나 들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만큼 바우하우스는 디자인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할 때 조형의 대한 이론과 역사를 배우면서 처음 접하였었는데, 그게 벌써 9년 전 일이니 기억에 남는 것은 아래와 같은 건물 이미지 뿐이였습니다.


데사우 국립바우하우스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87106931@N00/1432715400/)
바우하우스의 조감도 (출처 : http://docentedehistoria.blogspot.kr/)

이 건물은 현대식 건축 기법의 기본이 되는 커튼월 공법으로 지어졌습니다. 근대 이전의 건축물들은 육중하게 지면에서 쌓아 올린 방식이였으나, 바우하우스는 기둥으로 건물을 지지하고 높게 치솟는 현대 건축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전 건축은 앞과 뒤, 측면의 차이가 명백했으나 바우하우스는 3차원적으로 인지해야만 전체를 알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이 건물과 함께 당대에 만들어진 제품과 형식들로부터 느껴지는 모던함과 같은 이미지만 생각나는게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희미한 유년시절의 기억처럼 남아 있던 바우하우스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보다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이번 강의를 간략하게 요약해 드리고자 합니다.



1. 바우하우스를 왜 보아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바우하우스에 대해서 얘기할때 1925년경 이후 모호이너지(Laszlo Moholy-Nagy) 등에 의한 현대적인 이미지와 형식적인 측면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바우하우스는 현대 디자인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상징적 존재로 남아 여전히 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아가 알아야 할 것은 바우하우스의 이념적 측면입니다. 바우하우스가 실현하고자 했던 디자인 이념과 사회적 배경에서의 의의는 오늘날 한국 사회와 디자인이 고민해 보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시대적 상황
독일 사회는 산업, 군사적으로 막강한 국가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국민들의 자긍심 또한 막대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 사회는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폐위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하며, 치솟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백만 마르크 단위의 화폐가 발행 되었으니 왠만한 생필품 하나 사려면 수레에 돈을 한가득 담아 가야하는 상황이였다고 합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란스러운 사회였습니다. 이런 사회를 수습하기 위해 나타난 자가 바로 히틀러였고, 사람들은 그런 독재에 기대게 되버리는 비틀어진 군중심리가 작용하던 때였습니다.



3.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오직 새로운 예술만이 독일 사회를 수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발터 그로피우스였습니다. 과학적 원리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이 사회를 구원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바우하우스의 설립은 순수 조형 교육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정치적 의도 또한 그 바탕에 있었던 것입니다.



4. 바우하우스
국립 바우하우스 선언문, 목판화 (출처 : http://www.bauhausmuseum.com/)


최초의 바우하우스는 1919년 바이마르에 설립되었고 그로피우스는 초대 학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국립바이마르 바우하우스 설립 선언문에는 위와 같은 빛나는 고딕 성당 목판화가 담겨 있는데 이것은 바우하우스의 모든 조형예술을 통합하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냅니다. 고딕 성당이 한 채 지어지기 위해서는 건축을 중심으로 모든 장인 기술이 통합되어야 하듯이, 바우하우스는 건축을 중심으로 회화, 조각,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공예 등의 모든 예술 형태를 통합하고 총체 예술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우하우스는 이론을 실천으로 연결시킨 교육 기관이였습니다. 기초 조형을 통해 기본 원리를 가르치며 요소에서부터 전체를 만들어 갔으며, 생산 방식과 과학적 합리성에 기초한 기술 혁신과 체계를 통해 삶의 형태를 새롭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규칙을 만들고자 했으며 혼란된 사회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하기 때문에 약간은 독단적이여도 체계를 잡고자 했던 것입니다.

"모든 고대사는 하나의 호수로 흘러들어 로마사를 이루고 근대사는 다시 로마사의 물줄기로부터 흐르기 시작했다." -랑케-

독일 역사가 랑케의 말처럼 교수님께서는 바우하우스 또한 다음과 같이 이해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19세기 이래 근대 디자인의 모든 움직임과 철학이 바우하우스에서 결집되고 20세기 현대 디자인은 다시 바우하우스의 물줄기로부터 흐르기 시작했다."



5. 우리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바우하우스는 오늘날 단순히 이미지적인 의미가 아니라 건축에서 일상생활용품, 타이포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삶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념적 실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우하우스가 설정한 기능이 현대의 다양한 문화를 충족 시키기에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대한 기본 룰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전달되고 어떻게 교감되고 있는가가 중요한 사항인 것입니다.

반면에 오늘날 한국의 디자인, 그 중에서 예를 들면 집의 풍경은 어떠할까요? 그리고 집을 소개하는 광고와 여러 건축 관련 박람회, 페어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과시적 소비와 졸부 취향에 기인하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들은 어떠한가요? 이것들이 실존적인 집의 요건을 반영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의 프로그램으로부터 진화되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디자인이 아니라 어디서 먹다 버린 것을 주어다 먹는 식의 디자인은 아닌지, 그리고 그런 디자인을 맹목적으로 분별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문화적 연속성을 도외시 하고 매일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 하면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내용을 어떻게 형식적인 그릇에 담아 전달할 것이며, 본질은 무엇인지, 어떻게 소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꾸준히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강의를 마치셨습니다.
실존 감각을 가져라. 본질에 충실하라. 기본 쌓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이로부터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것이 공존하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 김민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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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3 00:36

[디자인 역사 산책 1] 디자인과 삶의 철학

따뜻한 봄을 향해가고 있는 2월 말, 서울대학교 디자인 학부 김민수 교수님께서 진행하는 ‘디자인 역사 산책’ 강의 시리즈의 첫 문을 열었습니다. 총 6번에 걸쳐 진행되는 ‘디자인 역사 산책’ 강의는 김민수 교수님과 함께 디자인의 역사를 배우면서 디자이너로서 갖추어야 하는 자세와 삶과 철학을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1주 : 디자인과 삶의 철학
2주 : 독일 바우하우스와 근대성
3주 : 1930년대 식민지 근대 공간과 이상의 시
4주 : 이탈리아 디자인의 역사와 인본주의
5주 : 일본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들
6주 : 한국 디자인의 역사와 과제들


이번에 진행된 첫 번째 강의는 앞으로 펼쳐질 강의에 대한 전반적인 오리엔테이션 시간이었습니다. ‘디자인과 삶의 철학’을 주제로 디자인 역사를 배우기에 앞서 어떤 자세로 역사를 배워야 하는 가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아바타’의 유명한 명대사 ‘I see you’를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I see you’ 의 뜻은 1차원적인 단순한 ‘보다’의 의미가 아니라 ‘이해하다/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자세도 ‘I see you’와 같습니다. 하지만 그냥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가지고 역사를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은 1988년 올림픽 이후로 26년동안 경제 발전에 있어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식 도안 양식화 기법을 답습해 형식주의 차원에서 내용과 맞지 않는 형식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시대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철학 없이 유행에 맞춰 즉각적인 만족을 위한 디자인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갖고 제품과 어우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수님은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맥락에서 한 단계씩 차곡차곡 디자인을 정제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디자이너의 디자인 철학을 잘 녹여낸 예로는 디터 람스와 BRAUN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디터 람스는 유행과 경기 여파에 상관 없이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명확히 내세운 제품으로 디자인을 정제 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BRAUN의 디자인은 시간의 누적 과정이 제품에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잘 고수했기 때문에 BRAUN의 제품들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디자이너의 영감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BRAUN사는 세계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자신만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lifeedited.com/built-dieter-rams-tough/
김 교수님은 많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시도와 노력의 사례가 있다고 하십니다. 최근 도시와 공공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도시만의 특색을 살리는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기 위해 지자체들이 많은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 정체성을 디자인에 담으려는 노력도 눈에 띕니다. 최근 바뀐 통영의 도시브랜드 슬로건에서 우리나라의 순박한 멋과 통영의 지역 특색을 적절히 녹아든 디자인을 볼 수 있습니다.

통영의 브랜드 슬로건. 이미지 출처 : http://www.tongyeong.go.kr/01about/01_02_03.asp
통영의 로고는 많은 섬과 바다를 이루어진 통영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통영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로고는 통영의 섬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통영의 브랜드 슬로건은 도시 아이덴티티에서 통영 지역의 풋풋함, 역사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좋은 디자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교수님은 살아있는 생명의 에너지가 느겨지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선 우리가 가진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예쁘게 꾸미는 것은 환경미화일 뿐이지 디자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철학이 담겨야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운이 담긴 디자인을 위해서는 사회 공동체가 서로 신뢰와 믿음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양한 문화를 쉽게 접하고 소비하는 21세기에서 우리의 중심을 잃지 않고 우리의 삶과 철학이 담긴 디자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시면서 ‘디자인 역사 산책’의 첫 번째 강의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마치며..
우리가 볼 수 있을 때, 우리 또한 보여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John berger

교수님이 말씀하신 위의 미술 평론가 John berger의 말처럼 혼란스러운 현대에 디자인이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해야하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디자인을 하기에 앞서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갖추고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현재 어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등을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강의에서도 역사를 듣는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주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역사를 내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겠습니다.

ⓒ 김민수, 2014
저작권 보호를 위해 위 강연 컨텐츠의 무단 사용 및 복제를 금합니다.
[참고##디자인역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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